매년 여름 잠기는 곳은 정해져 있다. 강남역, 사당역, 신림동. 우연이 아니다. 지형이다.
장마철 뉴스에는 매년 같은 지명이 나온다. 강남역 일대 통제, 사당역 물바다, 신림동 반지하 침수. 해가 바뀌어도 리스트는 거의 안 바뀐다.
여기서 이상한 점 하나. 강남역은 해발 16m다. 한강 바로 옆 반포(12m)보다 높다. 강에서 2km나 떨어져 있고, 강변보다 높은데, 왜 서울에서 제일 유명한 침수 지역이 됐을까.
답은 높이가 아니라 움푹함이다. 강남역 일대는 역삼·서초 언덕에 둘러싸인 대야의 바닥이다. 비가 오면 주변 언덕의 물이 전부 거기로 모여든다.
경사로 지도는 이미 전국의 땅 높이 데이터를 갖고 있다. 언덕을 칠하던 그 데이터다. 그렇다면 뒤집어서, "물이 모이는 낮은 땅"도 칠할 수 있지 않을까? 그래서 하루 잡고 실험해 봤다.
처음엔 단순하게 접근했다. "주변 평균보다 낮으면 저지대". 반경 1km의 평균 높이를 구해서, 그보다 낮은 땅을 칠했다.
결과를 보고 바로 이상함을 느꼈다. 관악산 옆 멀쩡한 언덕 동네가 강남역보다 더 진하게 칠해진 것이다. 숫자로 보면: 강남역은 주변 평균보다 11m 낮게 나왔는데, 서울대입구 언덕 위 동네는 22m나 낮게 나왔다. 언덕 위가 강남역보다 침수 위험이 크다고? 말이 안 된다.
원인은 평균이 산에 끌려간다는 것. 반경 1km 안에 관악산 능선이 들어오면 '주변 평균'이 확 올라간다. 그 옆 동네는 실제로는 언덕 위인데도 "평균보다 낮음"으로 찍힌다. 평균은 이렇게 극단값에 약하다.
그래서 기준을 바꿨다. 비교 대상을 '주변 평균'이 아니라 '주변에서 가장 낮은 땅'으로.
내 위치는 반경 1km에서 가장 낮은 땅보다 몇 m 위에 있는가?
빗물은 결국 동네 최저점으로 흘러 모인다. 그 최저점에 가까운 땅일수록 물이 모이기 쉬운 지형이다.
이 기준으로 다시 계산하고, 최저점에서 7m 안쪽인 땅만 파랗게 칠했다. 그리고 답을 아는 문제로 채점해 봤다 — 뉴스에 나온 상습 침수 지역 3곳과, 절대 안 잠길 언덕 3곳.
| 지점 | 동네 최저점 대비 | 판정 |
|---|---|---|
| 사당역 (상습 침수) | +0.7m | 짙은 파랑 ✓ |
| 강남역 사거리 (상습 침수) | +3.6m | 파랑 ✓ |
| 신림 도림천변 (2022 침수) | +4.9m | 파랑 ✓ |
| 서울대입구 언덕 위 | +32m | 투명 ✓ |
| 역삼동 언덕 | +23m | 투명 ✓ |
| 우면산 자락 | +100m | 투명 ✓ |
여섯 문제 전부 정답. 이번엔 지형과 상식이 일치했다.
강남부터. 파란 띠가 강남대로를 따라 남북으로 길게 이어진다. 이 띠는 사실 복개된 옛 물길(반포천 유역)과 거의 겹친다. 도시가 아스팔트로 덮어도 땅의 모양은 그대로라, 큰비가 오면 물은 옛날 물길대로 모인다.
신림은 더 서늘했다. 도림천 양옆으로 파란 면이 넓게 퍼지는데, 2022년 8월 반지하 참사가 났던 신림동 저지대가 정확히 이 안이다. 반대로 바로 옆 봉천동 언덕은 투명하다. 같은 동네 안에서도 잠기는 땅과 안 잠기는 땅이 갈린다.
사당역은 셋 중 제일 노골적이다. 동작대로 자체가 거대한 골짜기의 바닥이고, 역은 그 한가운데 있다. 최저점 대비 +0.7m. 양쪽 언덕에서 내려온 물이 여기 말고 갈 곳이 없다.
이 지도는 지형만 본다. 그래서 한계가 분명하다.
그 한계 안에서도 쓸모는 있다고 생각한다. 방을 구할 때 "이 반지하가 동네에서 낮은 자리인가"를 3초 만에 볼 수 있는 지도는, 적어도 내가 알기론 없었으니까.
궁금한 동네가 있거나 "우리 동네도 맞나 보자" 싶으면 메일로 알려주시길. 다음 확장 지역을 정하는 데 그대로 반영한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