주변 시세보다 싼 더블역세권 신축 투룸. 개이득인 줄 알았다. 이사 당일까지는.
몇 년 전, 집을 구하다가 이상하게 싼 매물을 하나 발견했다. 더블역세권에, 신축에, 투룸. 주변 비슷한 조건보다 눈에 띄게 저렴했다. 나는 속으로 "이걸 왜 이 가격에 내놨지?" 하면서도, 손해 볼 거 없다는 생각에 계약했다. 개이득이라고 생각했다.
이사 당일, 이유를 알았다.
집이 언덕 꼭대기에 있었다.
지도에서 역까지 "도보 5분"이라던 그 길은, 5분 내내 오르막이었다. 짐을 나르던 이삿짐 아저씨가 숨을 몰아쉬며 한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. "여기… 겨울에 눈 오면 큰일 나겠는데요."
그때 깨달았다. 부동산에서 말하는 "역세권", "도보 5분"은 전부 평면 위의 직선거리다. 지도는 위에서 내려다본 그림이라, 그 5분이 평지 5분인지 등산 5분인지 구분해주지 않는다.
그래서 같은 역세권이라도 언덕 위 집은 시세가 눌린다. 당연하다. 매일 걸어야 하는 사람 입장에선 완전히 다른 집이니까.
가격이 싼 데는 이유가 있었다. 그리고 그 이유는 계약서에도, 부동산 앱에도 안 적혀 있었다.
한 번 데이고 나니, 그 뒤로는 집을 볼 때마다 습관이 생겼다. 매물을 찾으면 지도를 켜고, 역에서 그 집까지 로드뷰를 골목골목 넘겨봤다. 화면 속 도로의 기울기, 계단, 옹벽 높이를 보며 "여기 좀 빡세겠는데" 하고 감으로 때려맞췄다.
매물 하나에 10분씩. 리스트가 스무 개면 밤이 샜다. 그러면서 계속 생각했다. "이걸 왜 아무도 안 만들었지?"
그 답답함이 쌓여서 결국 지도를 하나 만들었다. 길 자체를 고도에 따라 색칠한 지도다. 초록은 평지, 갈색은 언덕. 아파트 이름을 검색하면 역·학교·마트까지 각각 오르막이 "아파트 몇 층 높이"인지 나온다. 두 지점을 찍으면 그 길의 옆모습(단면)까지.
이제 로드뷰를 골목마다 넘겨보지 않아도 된다. 검색 한 번이면, 내가 밤새 하던 그 노가다가 5초 만에 끝난다.
지금 그 집, 다리는 튼튼해졌다. 진심이다.
그래도 다음 집은 꼭 언덕부터 보고 정할 거다. 여러분도요.